당신이 모르는 포르쉐, “프로젝트: 비밀”
  • 슈투트가르트=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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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2.23 18:11
당신이 모르는 포르쉐, “프로젝트: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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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를 세운 페르디난트포르쉐 박사는 무려 116년전, 2개의 전기모터가 각각 뒷바퀴를 돌려 시속 35km로 달릴 수 있는 전기차를 만들었다. 포르쉐 박사의 ‘Egger-Lohner electric vehicle, C.2 Phaeton’는 당시 여느 전기차에 비해 크게 다를 것이 없어보였지만 분명 월등히 빨랐다.

▲ Egger-Lohner electric vehicle, C.2 Phaeton(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포르쉐 박사는 오스트로다임러, 다임러-벤츠 등을 거쳐 포르쉐를 세웠고, 독일 정부의 요구에 따라 국민차 폭스바겐 비틀까지 만들었다. 포르쉐 박사의 절대적인 영향력은 그의 아들 페리포르쉐에게 이어졌다. 또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포르쉐는 더이상 전투기 엔진이나 탱크를 만들 필요도 없었고, 오직 ‘드림카’ 만들기에 열중할 수 있었다.

▲ Porsche 356 Roadster(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드림카를 찾을 수 없어 내가 직접 만들었다”는 페리포르쉐의 호기 넘치는 말처럼 포르쉐는 언제나 기술을 선도했고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내세웠다.

그런 포르쉐가 가장 감추고 싶었던 것은 미완성의 포르쉐다. 완벽한 포르쉐를 만들기 위해 제작된 프로토타입에는 포르쉐의 수많은 비밀과 아픔이 담겨있다. 양산을 앞에 두고 불현듯 중단된 프로젝트도 많고 훗날 되살린 프로젝트도 있다. 포르쉐도 남몰래 눈물 젖은 빵을 많이 먹은 셈이다.

▲ 내년 1월 11일까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위치한 포르쉐박물관에서는 '프로젝트:비밀' 특별 전시가 열린다.(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포르쉐는 당당히 그 비밀과 아픔을 공개했다. 오늘날의 포르쉐가 하루 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하다. 또 우리가 비밀을 공개해도 너희는 절대 따라오지 못한다는 일종의 도발처럼 느껴진다. 도발에 혹한 모터그래프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위치한 포르쉐박물관에서 그들의 일급 비밀을 살펴봤다.

◆ 1973 포르쉐 FLA 리서치 비히클

희한하겠지만 포르쉐가 빠른 차 만들기에만 열중한건 아니다. 1973년 제작한 이 프로토타입은 ‘장수차’ 만들기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1972년 로마클럽의 경제학자와 기업들이 경제 성장이 환경오염 및 자원고갈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 ‘성장의 한계(Limits of Growth)’는 전유럽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 1973, Porsche Long life car research project vehicle(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독일 연방 정부는 위원회를 조직해 자동차 회사에 ‘장수차 프로젝트’를 지시했다. 포르쉐가 그 대책으로 내놓은 차가 ‘FLA(Forschungs projekt Langzeit-Auto)’다.

▲ 1973, Porsche Long life car research project vehicle(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개발 목적이 종전까지의 포르쉐와 전혀 달랐기 때문에 2.5리터 4기통 엔진은 최고출력은 75마력에 불과했다. 하지만 엔진회전수를 억제하고 마모를 줄여 수명을 극대화했다. 수명 20년과 주행거리 32만km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뼈대는 모두 아연 도금됐고, 이 차의 영향으로 1975년부터 포르쉐는 차체 전체에 아연도금 강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 1976 포르쉐 924 월드 레코드카

포르쉐는 보급형 스포츠카도 꾸준하게 선보였다. 보급형 모델은 설계만 포르쉐가 맡고 생산이나 판매는 주로 폭스바겐이 담당하는 일이 많았다. 폭스바겐포르쉐란 엠블럼이 붙기도 했다. 또 아우디도 이에 깊숙하게 관여했다.

▲ 1976, Porsche 924 World Record Car(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1975년 출시된 924는 포르쉐 최초의 수냉식 엔진이 차체 앞부분에 탑재됐다. 폭스바겐의 2.0리터 직렬 4기통 엔진은 100마력 이상의 성능을 냈고, 포르쉐는 무게 밸런스와 핸들링에 많은 중점을 둬 설계했다. 하지만 보급형 포르쉐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에 포르쉐는 새로운 마케팅 수단이 필요했다. 보급형 모델도 빠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이를 위해 125마력의 4기통 엔진에 터보 차저를 탑재해 최고출력을 250마력으로 끌어올렸다. 또 윈드터널에서 광범위한 테스트를 거친 공기역학적인 디자인을 적용했고 차체의 모난 부분을 모두 매끈하게 다듬었다.

▲ 1976, Porsche 924 World Record Car(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924 세계기록차의 목표는 약 1만6천km를 평균시속 250km로 달리는 것이었지만, 1977년 불현듯 포르쉐는 프로젝트를 중단한다. 이에 이탈리아의 테스트 트랙 ‘나르도 링’으로 갈 채비를 마친 924 세계기록차는 포르쉐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 1978 포르쉐 995 리서치 패신저카

FLA 리서치 비히클과 비슷한 외관을 갖췄지만, 목적은 다르다. 995 리서치 패신저카는 미래 스포츠카를 위한 연구 및 기술이 목적이다. 이 프로젝트는 자동차 기술 발전을 위해 독일 연방 정부가 포르쉐에게 의뢰했다.

▲ 1978, Porsche 995 research passenger car(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포르쉐는 1978년부터 1979년까지 이 차를 개발했다. 4인승을 기반으로 연구했고, 효율적이면서도 스포츠카의 기본 성격을 갖춰야 했다. 이를 위해 경량 알루미늄 차체를 사용했고, 최고출력 130마력을 발휘하는 3.0리터 V8 엔진과 5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조합했다. 무게는 1290kg이며 최고속도는 시속 200km다.

▲ 1978, Porsche 995 research passenger car(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포르쉐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경량 기술이나 듀얼클러치, 엔진 효율성 등은 이후 출시된 신차에 적용되기 시작하며 빛을 봤다.

◆ 1980 포르쉐 960 P.E.S. 콘셉트카

1980년 열린 제 8회 자동차 안전성능 컨퍼런스(ESV, Experimental Safety Vehicle)에 포르쉐는 928를 기반으로 제작한 960 P.E.S.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 1980, Porsche 960 P.E.S. Concept Car(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960 P.E.S. 콘셉트카는 듀얼 파이프 사이드 멤버가 적용됐고,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문짝과 보닛, 스포일러 등을 적용했다. 안전은 물론 경량화를 통해 연료효율성까지 확보하기 위함이다. 또 탑승자 및 보행자까지 고려한 차체 설계와 업계 최초로 고장력 강판을 차체에 적용했다. 최고출력 250마력을 발휘하는 4.5리터 V8 엔진과 포르쉐듀얼클러치 변속기가 탑재됐다. 

▲ 1980, Porsche 960 P.E.S. Concept Car(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 1982 포르쉐 959 C29 에어로다이나믹스 콘셉트카

1986년부터 약 300여대 가량만 한정 생산된 포르쉐 959는 911보다 한단계 성능이 뛰어난 모델이었다. 애초에 그룹B 호몰로게이션을 위해 제작됐고, 뛰어난 성능은 1980-1990년대 슈퍼카 경쟁에 불을 지폈다.

▲ 1982, Porsche 959 C29 Aerodynamic Concept Car(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959 프로토타입은 1981년부터 개발이 시작됐고, 박물관에 전시된 959 C29 에어로다이나믹스 콘셉트는 1982년 공기역학을 개선하기 위해 제작된 모델이다. 포르쉐는 차체 경량화와 공기저항에 대해 누구보다 민감했다. 그래서 이 콘셉트에는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의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 1982, Porsche 959 C29 Aerodynamic Concept Car(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양산된 포르쉐 959에는 2.8리터 6기통 박서 엔진에 바이 터보 엔진이 탑재돼 최고출력 450마력의 힘을 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3.7초, 시속 200km까지는 13초가 걸렸다. 또 최고속도는 시속 315km에 달했다.

포르쉐는 959로 다카르랠리와 르망24시 내구레이스에 참가해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 1984 포르쉐 911 카레라 3.2 E19 콘셉트카

1984년, 911은 '카레라' 시대를 맞이한다. 기존 911의 배기량은 3.0리터였던 반면 카레라는 3.2리터의 배기량을 갖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엔진 부품의 대부분이 새롭게 교체됐고, 출력과 연비가 향상됐다. 

▲ 1984, Porsche 911 Carrera 3.2 E19 Concept Car(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911 카레라 3.2의 탄생으로 잠깐 숨 돌릴만도 할텐데, 포르쉐는 새로운 911에 대한 연구를 곧바로 시작했다. 포르쉐의 연구개발센터가 위치한 독일 바이사흐(Weissach)에서 포르쉐 엔지니어들은 911 카레라 3.2의 디자인을 개선하는 일에 몰두했다.

▲ 1984, Porsche 911 Carrera 3.2 E19 Concept Car(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창문, 헤드램프, 보닛, 앞뒤 범퍼 등의 위치와 디자인을 개선하고 루프의 빗물받이 등을 제거했다. 또 휠커버를 달고, 독특한 디자인의 리어 스포일러를 적용했다. 원활한 공기흐름을 위해 차체 밑바닥까지 평평하게 만들었다. 

노력의 결과 공기저항계수는 0.35Cd에서 0.272Cd로 개선됐고, 이 콘셉트카에서 얻어진 연구결과와 정보는 1988년 모습을 드러낸 911인 964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 1984 포르쉐 984 스포트 콘셉트카

1984년부터 1987년까지 포르쉐 바이사흐 연구개발센터에서는 작고, 가벼우며 공기역학적인 로드스터 개발이 한창이었다. 

▲ 1984, Porsche 984 Sport Two-Seater Concept Car(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984 콘셉트는 포르쉐가 엔진과 변속기 개발을 담당했던 세아트의 소형차 이비자에서 영감을 받았다. 포르쉐는 이비자처럼 작고 효율적인 스포츠카를 상상했다. 특히 3-4천만원대의 가격으로 젊은 소비자층을 겨냥할 계획이었다.

작은 로드스터인만큼 엔진과 변속기의 성능보다는 차체 경량화와 공기역학적인 디자인에 중점을 뒀다. 최고출력 135마력의 2.0리터 4기통 박서엔진을 탑재했고, 최고속도는 시속 220km에 달했다. 하드톱이 장착된 모델임에도 무게는 880kg에 불과했다.

▲ 1984, Porsche 984 Sport Two-Seater Concept Car(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984 콘셉트는 양산까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으나, 1987년 미국의 경제난에 따른 자동차 판매 위기의 여파로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말았다.

◆ 1986 포르쉐 944 터보 내구력 측정 테스트카

가솔린 엔진이 장착된 자동차가 처음 특허를 받은지 100년 후인 1986년 1월 29일, 포르쉐 944 터보는 아주 특별한 세계 여행을 하게 됐다. 포르쉐는 양산형 944 터보의 내구성을 측정하기 위해 세계 일주를 계획한 것이다.

▲ 1986, Porsche 944 Turbo Endrurance Test Vehicle(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오스트리아 티롤의 독수리 문장이 새겨진 944 터보는 미국 네바주에서 출발해 한달 동안 다섯개의 대륙, 4만1140km를 달렸다. 운전은 오스트리아의 장거리 전문 드라이버 게르하르트플래트너가 담당했다.

▲ 1986, Porsche 944 Turbo Endrurance Test Vehicle(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최고출력 220마력의 2.5리터 4기통 터보 엔진이 장착된 944 터보는 영하 28도에서 영상 41도를 오가는 여정에서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고 게르하르트플래트너는 밝혔다. 

◆ 1987 포르쉐 928 카브리올레 콘셉트카

911은 포르쉐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지만 여러 제약이 많았다. 독특한 구조 때문에 큰 변화나 시도가 어려웠다. 미국에서 거대한 엔진을 탑재한 GT카가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911로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포르쉐는 1977년 911보다 설계가 자유롭고 거대한 엔진을 장착할 수 있는 FR방식의 928을 내놓는다. 당시 포르쉐는 928를 두고 ‘위대한 새 스포츠카’라고 설명했다.

▲ 1987, Porsche 928 Cabriolet Concept Car(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928은 잠재적으로 911을 대체하는 모델이었다. 하지만 포르쉐 마니아들은 이를 크게 반기지 않았다. 포르쉐는 911 카브리올레를 통해 거둔 성공을 기억하고 928 출시 10년만에 카브리올레 제작에 돌입했다.

▲ 1987, Porsche 928 Cabriolet Concept Car(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928 카브레올레 콘셉트카는 최고출력 320마력의 5.0리터 V8 엔진이 탑재된 928 S4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944 카브리올레의 소프트톱을 제작했던 아메리칸 선루프 컴패니(ASC)가 참여했고, 다수의 초안과 도면이 준비됐다. 하지만 완성도 높은 콘셉트카를 보고도 포르쉐 이사회는 제작을 승인하지 않았다. 

◆ 1988 포르쉐 965 프로토타입 L7

포르쉐 965 프로토타입 L7도 실현되지 못한 프로젝트로 남았다. 포르쉐 965는 1989년부터 생산된 911인 964의 상위 모델로 개발됐으며 959의 첨단 기술과 디자인이 접목됐다.

▲ 1988, Porsche 965 Prototype L7(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최초의 계획은 최고출력 350마력을 발휘하는 3.4리터 바이터보 엔진과 포르쉐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탑재해 최고속도 시속 290km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또 전자 제어 엔진 매니지먼트, 타이어 공기압 모니터링 시스템, 배기가스 정화 시스템까지 갖췄다.

▲ 1988, Porsche 965 Prototype L7(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하지만 새로운 수냉식 6기통 박서 엔진은 개발이 마무리되지 않았고, 포르쉐는 일단 아우디의 V8 엔진을 차체 뒷부분에 탑재하고 여러 테스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965 프로젝트는 개발 비용 상승의 이유로 1990년 중단됐고 대부분의 965 프로토타입은 폐기됐다.

◆ 1991 포르쉐 989 콘셉트카

의외로 포르쉐는 오랫동안 4인승 모델에 대한 욕심을 갖고 있었다. 포르쉐가 4인승 4도어 모델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이다. 내부적으로 새로운 세그먼트에 대한 도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 1991, Porsche 989 Concept Car(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당시 포르쉐 R&D를 총괄하던 울리히베츠 박사는 911의 디자인을 유지하면서도 세련된 세단 만들기에 집중했다. 최고출력 350마력의 4.2리터 V8 엔진을 차체 앞쪽에 탑재했고 포르쉐답게 후륜구동을 고집했다.

하지만 계산에 익숙한 포르쉐 보드진들은 989 개발에 들어간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또 당시 928 또한 흥행에 참패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험을 시도할 여력이 없었다. 989 프로젝트는 1991년 1년 완전히 종료됐고, 이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베츠 박사는 그해 9월 포르쉐를 떠난다.

▲ 1991, Porsche 989 Concept Car(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그로부터 18년 후, 포르쉐는 4도어 모델인 파나메라를 선보였다. 파나메라는 가장 못 생긴 차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카이엔과 함께 포르쉐를 먹여살리는 효자 모델로 자리 잡았다.

◆ 1993 포르쉐 박스터 986 A4 테스트카

포르쉐는 1993년 새로운 스포츠카 박스터 개발을 결정한다. 박스터는 911보다 작을 뿐더러 엔진이 차체 중앙에 탑재된 미드십 구조를 갖는다. 작고 가벼운 차체에 소프트톱이 더해져 성능과 운전의 즐거움이 배가됐다.

▲ 1993, Porsche 986 A4 Test Vehicle(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포르쉐가 공개한 986 A4 테스트카의 겉모습은 영락없는 964 카레라 2 타르가다. 하지만 속엔 박스터에 장착될 최고출력 207마력의 힘을 내는 3.2리터 6기통 박서 엔진이 차체 중앙에 자리했다.

▲ 1993, Porsche 986 A4 Test Vehicle(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포르쉐를 비롯한 많은 브랜드는 언론이나 스파이샷 업체으로부터 비밀을 지키기 위해 986 A4 테스트카처럼 다른 모델의 껍데기 안에 파워트레인이나 섀시를 넣는다. 이를 ‘뮬(Mule)’이라고 하는데 포르쉐는 986 A4 테스트카로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아무런 의심을 받지 않고 공공연하게 박스터 개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 1996 포르쉐 911 카레라 카브리올레 프로토타입

1997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911인 996을 두고 포르쉐는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설명한다. 911 최초로 수냉식 6기통 박서 엔진이 장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 공랭식 엔진에 빠져있던 마니아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또 디자인도 급격하게 변했다. 특히 그동안 고수했던 원형 헤드램프가 박스터처럼 그로테스크하게 변한 것도 큰 충격이었다.

▲ 1996, Porsche 911 Carrera Cabriolet Prototype(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포르쉐는 1996년부터 996 카레라 카브리올레 프로토타입을 제작해 개발에 착수했다. 3.2리터 6기통 박서엔진이 탑재됐고 278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했다. 위장막을 쳤지만 특유의 헤드램프는 완전히 숨길 수 없었다. 포르쉐 내부에서는 미국너구리과의 포유류인 ‘코아티(Coati)’로 불렸다.

코아티는 1997년 3월까지 주행성능과 관련된 각종 정보 수집에 활용됐으며, 사명을 다한 후 포르쉐박물관의 비밀창고로 옮겨졌다.

◆ 2008 포르쉐 파나메라 S 프로토타입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비밀 유지는 예전처럼 쉽지 않았다. 2009년 처음 모습을 드러낸 포르쉐 최초의 4도어 그란투리스모 파나메라는 진작부터 언론을 통해 그 실체가 드러났다.

▲ 2008, Porsche Panamera S Prototype(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박물관에 전시된 파나메라 S 프로토타입은 2008년 제작된 것으로 미국의 데스밸리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혹독한 테스트를 거쳤다. 또 점차 기업화되고 있는 스파이샷 업체을 통해 퍼지는 정보를 막기 위해 차체 전부분에는 각종 위장막이 사용됐다.

◆ 2011 포르쉐 918 스파이더 프로토타입 롤링 섀시

2010년 제네바 모터쇼, 포르쉐가 내놓은 918 스파이더 콘셉트는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918 스파이더 콘셉트는 카레라 GT의 계보를 잇는 슈퍼카이며 포르쉐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포르쉐 이사회는 모터쇼에서의 뜨거운 반응에 곧바로 개발 찬성 결정을 내린다.

▲ 2011, Porsche 918 Spyder Prototype Rolling Chassis(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문제는 엔지니어들이었다. 대부분의 콘셉트카는 어느 정도 개발이 진행된 후에 창의적인 디자인을 첨가하는데, 918 스파이더는 디자인이 개발 단계보다 앞섰다. 개발 콘셉트만 잡혀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빠듯했고, 미리 정해진 디자인 틀에 맞춰야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 2011, Porsche 918 Spyder Prototype Rolling Chassis(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포르쉐는 2012년 초 몇몇 기자들을 초청해 918 스파이더를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했다. 나르도 링에서 진행된 이 행사에서 928 스파이더 프로토타입 롤링 섀시가 사용됐다. 살갗없이 기괴한 뼈대만 존재하는 롤링 섀시는 성능, 내구성 및 각종 전자부품 등을 테스트한다. 

◆ 2013 포르쉐 918 스파이더

포르쉐는 2013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를 통해 양산형 918 스파이더를 공개했다. 그 모습은 콘셉트카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더 완성도를 높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공개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꿈만 같았다.

▲ 2013, Porsche 918 Spyder Lap Record(사진=슈투트가르트 김상영 기자)

4.6리터 V8 터보 엔진과 전기모터가 결합돼 최고출력 887마력을 발휘하면서도 유럽 기준으로 30km/l가 넘는 연비는 그야말로 페리포르쉐가 말하는 드림카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차의 실제 성능에 의구심을 가졌지만, 포르쉐는 뉘르부크르링 노르드슐라이페의 공식 랩타임을 공개하며 의심을 불식시켰다.

6분 57초.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7분대의 벽이 허물어졌고 일반 도로를 달릴 수 있는 양산차 중에서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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