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로 밀레 밀리아를 완주한 필자의 이야기를 모터그래프가 독점 연재합니다. 1927년 시작된 밀레 밀리아는 GT(Grand Touring)의 개념을 파생시켰으며 클래식카 마니아들에게 '꿈의 랠리'로 불립니다. [편집자 주] 

밀레 밀리아의 일정은 프리 이벤트를 포함해 총 5일이다. 이 중 4일간 경기가 펼쳐지는데 하루는(1개의 레그) 오전, 오후 2개의 섹션으로 진행된다. 각 섹션에는 정해진 시간에 일정 구간을 달리는 타임 트라이얼과 주최 측에서 설정해 놓은 평균 속도로 구간을 통과해야 하는 에버리지 스피드 트라이얼이 있다. 이 중 스피드 트라이얼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정확하게 계측 게이트를 통과해야 하는데, 정해진 시간보다 빨라도, 늦어도 패널티를 받는다. 다른 팀은 랠리 타이머와 여러 개의 스톱워치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차에 있는 트립미터 2개와, 평균 속력 게이지, 아이폰의 스톱워치만 사용했다. 

로드북은 생각보다 자세하다. 섹션 별로 주행해야 하는 거리와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체크포인트가 표시되어 있다. 체크포인트에서는 타임카드에 도장을 받아야 하는데 하루에 적게는 2개, 많으면 4개 이상을 받아야 한다. 도로 번호를 포함해 주의 사항, 제한 속도, 장애물, 다리 등이 표시되어 있으며 짧게는 50m, 길게는 50km 이상의 단위다. 내비게이터는 로드북에 표시된 이 안내를 모두 드라이버에게 전달해야 한다.

#출발부터 길을 잃다!

레그1 섹션 1 
이동 거리: 182.08km
시간: 4시간 
평균 속도 45.52km/h

12월 4일 오전 10시 12분. 드디어 출발이다. 오전 9시부터 클래스별로 출발한 밀레 밀리아 UAE는 총 123대가 등록했으나 첫날에는 97대만 출발할 수 있었다. 오래된 차들이 많다 보니 컨디션에 문제가 생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스타트라인에서 대기하면 오피셜이 타임카드를 나눠준다. 타임카드에는 출발 시간이 수기로 기록되는데, 출발 시간을 기준으로 정해진 시간(섹션 1은 4시간 혹은 3시간)에 맞춰 계측이 끝나는 지점인 '타임 컨트롤'을 통과해야 한다. 늦게 도착하는 건 당연히 불리하고, 그렇다고 일찍 도착해도 페널티가 있다. 정확한 시간에 맞춰 도착해야 페널티 없이 높은 순위를 차지할 수 있다. 

전날 밤에 로드북을 꼼꼼하게 살폈지만 '과연 이걸 가지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섹션 1의 로드북 항목은 74개(이를 전부 드라이버에게 읽어 주고 타임 트라이얼이나 애버리지 스피드 트라이얼에서는 주행 시간도 계산해야 한다)로 비교적 적은 숫자였다.

호기롭게 스타트라인을 통과했지만 이내 넓디넓은 메이단 안에서 길을 잃었다. 로드북을 보며 길을 찾아가는 것이 익숙지 않은 것은 당연했고, 주차장 길이만 3km가 넘어 메이단을 빠져나오는 데도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첫 실수로 의기소침했지만 미구엘은 "너무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정해진 시간에만 도착하면 되니까 다음 구간에 빨리 도착하면 문제없어"라고 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름대로 머리를 썼는데, 기본 출발 때 0으로 맞춘 트립미터의 거리와 로드북의 누적 주행거리를 비교하는 것이었다. 로드북에는 누적 주행거리와 구간 주행거리가 자세하게 나와 있는데 이를 통해 최소한 얼마만큼 이동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겨우 메이단을 빠져나와 첫 번째 체크포인트인 나즈와까지는 약 50km. 여기에서 타임카드에 도장을 받고 고속도로와 국도를 통해 사막을 20여 km를 이동 후 첫 번째 애버리지스피드 트라이얼 구간을 통과했다. 첫 번째 타임트라이얼 구간은 중간 기착지인 리치칼튼 호텔 안에 있었다. 연달아 있는 7개의 기록 계측 구간(SS)을 통과하는 데 걸린 시간은 2분 남짓. 짧게는 80m부터 길게는 120m 구간을 정해진 시간대로 주행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국경을 넘어 오만으로 

레그1 션2 
이동 거리: 226.91km
시간: 3시간 
평균 속도: 75.64km/h

밀레 밀리아 기간 동안 가장 어려운 구간은 타임 트라이얼 구간이었다. 구간별로 설정된 기록(초 단위)에 맞춰 주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리치칼튼을 빠져나와 시작된 섹션 2는 타임트라이얼과 함께 시작했다. 섹션 1 타임트라이얼과 같은 코스에서 진행됐는데 그나마 처음보다는 나았다.

섹션 2는 이번 밀레 밀리아 UAE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으로 꼽히는 곳이다. 사막을 한참 지나와 시작된 섹션 2는 라스 알 카이마를 지나 오만 무산담까지 이어지는 코스다. 오만의 카사브 포트까지 갔다가 다시 국경을 넘어 라스 알 카이마까지 돌아오는 코스는 대부분이 고속도로라 속력을 낼 수 있었다. 물론 고속도로 구간 외에 국도 구간도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고속국도에 가까웠다. 본격적으로 고속도로에 들어서기 전 주유소에 들렀다. 

주유소에서 만난 1931년식 알파 로메오 6C 1750 GS 에이프릴. 코치빌더가 딱 1대만 제작한 원오프 모델이다. 
주유소에서 만난 1931년식 알파 로메오 6C 1750 GS 에이프릴. 코치빌더가 딱 1대만 제작한 원오프 모델이다. 

경기 운영을 포함해 주유, 정비 등등 모든 것은 드라이버와 내비게이터 둘이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연료 소모량이나 차의 상태를 늘 꼼꼼하게 챙겨야 했다. 엔트리 96번의 우리차(알파 로메오 8C 컴페티치오네)의 연비는 생각보다 괜찮았고 사막을 달릴 때는 특유의 8기통 사운드가 아주 매혹적이었다.

오만까지 이어지는 길은 중간에 아랍에미리트의 공장지대를 통과하는 곳이다. 두 개의 커다란 시멘트 공장과 크고 작은 마을을 지나 도착한 UAE 오만 국경은 미리 도착한 참가자들로 가득했다. 밀레 밀리아는 국가적인 지원이 있는 이벤트다 보니 국경 통과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여권과 통관에 필요한 자동차 서류(렌터카나 리스 차는 불가, 여권 소지자 본인 소유 차임을 증명하는 서류)만 확인하면 된다.

오만 국경을 지나자 세상에서 다시 보기 힘들 것 같은 해안도로가 나타난다. 좌측에는 푸르디 푸른 페르시아만이, 우측에는 기암괴석이 만들어낸 신비한 풍경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있는 굽이진 길로 들어갔다. 무산담은 UAE나 기타 중동 국가에서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오만 본토와 떨어져 있는 곳이라 신비함도 가득했다. 

끝이 없이 이어질 것 같은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따라 이동하기를 약 40km. 체크포인트에서 도장을 받고 카사브 항구 근처 주차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미 주차장에는 어린아이들과 사람들이 가득했다. 카사브 항구에서 열리는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인데, 우리도 함께 어울릴 수 있었다. 현지인들은 외부에서 온 우리들에게 차와 간식 거리를 제공했고(사전에 예정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정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원해 주었다. 

해안도로를 다시 타고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 라스 알 카이마까지 오는 길에는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우리를 안내했다. 국경에서 시간을 좀 보내고(여긴 자동차가 들어가는 엑스레이 검색대가 있다) 다시 도로에 오르니 이미 해가 졌다. 우리는 국도를 통해 첫날 기착지인 알 카이마 인터콘 하얏트 아일랜드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이미 예정된 주행 시간을 훌쩍 넘어 버렸지만 그 누구도 불평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함께 달리는 것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밤중에 사막 국도를 달리는 것은 생각보다 낭만이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날씨는 여전히 더웠고 해안가의 습기는 저녁이 되면 더욱 높아졌다. 긴장 속에 첫날 주행을 마쳤는데 얼른 호텔에 들어가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나마 4일 일정 중에 비교적 편한 일이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숙소에 돌아와 기록을 확인하니 레그1은 총 93대가 마쳤고 우리는 전체 순위 42위를 기록했다. 원래 당초 목표였던 전체 순위 50% 이내 안착은 성공했다. 클래스 순위는 30대 중에 9등으로 마쳤다. 처음 치고는 운이 좋았던 하루였다. 참고로 우리와 같은 차인 알파 로메오 8C 컴페티치오네로 출전한 팀은 2팀이 더 있었는데, 그중 한 팀은 오전 일정에서 변속기 문제로 레그1을 포기했고, 나머지 한 대는 내비게이터 없이 혼자 경기를 운영했다. 

#덧붙여

아랍에미리트는 총 7개의 왕국(토호국)으로 구성된 국가다. 가장 면적이 큰 아부다비, 그다음은 두바이, 샤르자, 라스 알 카이마, 푸자이라, 움 알쿠와인, 아지만이 그 구성국이다. 이번 밀레 밀리아 UAE에서는 아랍에미리트 내 7개 왕국을 모두 거쳐 간다. 이슬람 국가의 무시무시함(?)이 알려져 있지만 실제 필자가 만난 아랍에미리트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영어가 가능했다. 첫날 일정을 마치고 공식 만찬에 참석했을 때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이곳에 동양인은 나 혼자뿐이었다. 이후에 서포터로 참가 중인 일본인 여성이 한 명 있었는데 공식 참가 인원 중에 동양인은 필자가 유일했다. 밀레 밀리아의 기록은 이탈리아 기록 연맹(https://www.ficr.it/)에 모두 등재된다. 필자의 이름과 기록도 함께 등재되어 있다. 보통 사람들에겐 별 일 아닐 수 있지만, 필자에게는 매우 특별한 일이다. 

취재 협조 : 토미니 클래식(www.tominiclassic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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