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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김상영] 지프 문신을 한 사내들

기사승인 2017.08.04  10: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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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에서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15번 프리웨이는 정말 지루했습니다. 황량한 풍경이 계속되니, 속도감도, 거리감도 조금씩 사라졌죠. 가뜩이나 열시간 넘도록 비행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운전을 시작했으니 컨디션도 정상은 아니었습니다. 설상가상, 해는 순식간에 저물었고, 가로등 하나 없는 프리웨이에서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고속도로에서는 차 한대 구경하기 어려웠는데, 간판도 없었던 휴게소(?) 앞엔, 수많은 픽업트럭과 거대한 SUV가 줄지어 서있었습니다. 마치 오토캠핑장처럼 텐트를 펼쳐놓고, 맥주를 마시는 사내들도 많았습니다. 그 광경이 몹시 신기했는데, 그건 그들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주황색 닷지 챌린저 RT를 타고 있는 절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더군요. 혹시 몰라 약간의 현금만 챙겨 차에서 내렸죠.

 

가게 앞에 진을 치고 있는 덩치 큰 사내들이 제발 말 걸지 않길 바랬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가게로 들어서는데, 대뜸 한 놈이 제 앞을 막아섰습니다. 그리고 오른손을 올리는데, 전 총이라도 꺼내는 줄 알았습니다. “이거 네차냐”며 그는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습니다. 렌터카라고 말하니 조금 실망한 듯 했지만, "굿 초이스"라며 무리로 돌아가더군요.

그런데 돌아가는 그의 팔뚝에 새겨진 문신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얼핏 봤을땐 몰랐는데, 'Jeep'와 함께 ‘ㅇlllllllㅇ’ 이렇게 생긴 지프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죠. 그 주변에 있던 다른 남자들도 지프를 연상시키는 문신이 있었습니다. 자기 차를 문신으로 새기는 것은 처음 봤습니다. 문화 충격이었죠.

 

그들은 샌디에이고에서 활동하는 지프 동호회였는데, 로스앤젤레스의 회원들과 합류해 라스베이거스로 갈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목적은 저와 같았어요. 매년 11월 열리는 세마쇼(SEMA)를 보기 위함이었죠. 물론 현장에서 그들을 다시 만나진 못했지만, 세마쇼에서 자신이 열심히 튜닝한 지프를 전시하는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미국인들이 지프란 브랜드를 얼마나 애정하는지 알 수 있었죠.

 

지프는 우리나라에서도 마니아층이 두터운 브랜드입니다. 명확한 캐릭터가 마니아들을 계속 끌어모으고 있죠. 그리고 다른 FCA그룹의 브랜드와 달리 지프는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활동을 잘 전개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강원도 웰리힐리파크에서 열렸던 국내 최대 오프로드 행사 ‘지프 캠프 2017’가 마니아들을 위한 대표적인 이벤트입니다.

 

지프 캠프는 64년 전통의 오프로드 축제로 매년 미국, 유럽, 호주 등 전세계 각지에서 지프 어드벤처, 지프 짐보리 등의 이름으로 개최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2004년부터 시작됐죠. 저도 올해엔 직접 지프 캠프에 참가했는데, ‘지프가 오프로드를 잘 달린다’는 다소 진부한 얘기만 한게 아니라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양한 부대행사를 통해 지프를 타는 사람들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었죠.

 

지프가 있기 때문에 FCA코리아는 누구보다 마니아들의 중요성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브랜드를 알리는 법, 소비자가 브랜드를 사랑하게 만드는 방법 등도 잘 알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나라가 크라이슬러와 피아트의 재고정리 시장이 아니라면, 이들을 위해서도 움직여야 합니다.

업계에서는 크라이슬러와 피아트의 철수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FCA코리아는 미국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미니밴 ‘퍼시피카’나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500L’, 피아트의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할 ‘124 스파이더’ 등의 매력적인 신차 출시 계획도 없는 상황이고, 재고 물량만 빨리 털어버릴 생각인 것 같습니다.

차를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서, 브랜드를 사랑하는 소비자들을 위해서 어떤 일을 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팔뚝에 크라이슬러와 피아트를 새길 정도는 아니더라도, 브랜드의 가치를 인정하는 마니아들을 늘려가야 합니다.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를 잘 팔기 위한 핵심은, 어쩌면 자동차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김상영 기자 sy.kim@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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