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현대차, 최악의 50주년 맞을 텐가 <1-내우외환>
  • 신승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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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26 15:20
[기자수첩] 현대차, 최악의 50주년 맞을 텐가 <1-내우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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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은 현대차 창립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로 오늘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단순한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장을 통해 미래 50년을 향한 재도약의 원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지난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배포된 현대차 영업보고서에 담긴 정몽구 회장의 인사말이다. 한 해 반환점을 돈 지금, 정 회장의 바람과 달리 2017년은 역대 최악의 해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현대차가 진출한 국가는 전 세계 190여개국에 달하지만, 전체 판매량의 절반 이상이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에서 발생한다(2016년 기준 52.2%). 문제는 올해 3곳 시장에서 모두 위기를 맞은 것이다. 미국과 중국에서는 심각한 판매 부진을 겪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브랜드 이미지가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는 모양새다.

#미국 실적, 정말 질적 성장을 위한 체질 개선일까?

현대차는 올 상반기 미국에서 전년대비 10.1% 하락한 33만6441대를 기록했다. 상반기 미국 판매 실적이 줄어든 것은 2009년 이후 무려 8년 만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 측은 “수익성을 강화하기 위해 렌터카 등 플릿 판매(fleet sales) 비중을 줄였다“며 “당장의 판매량은 줄었지만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지난달 미국에서 대당 평균 3259달러(약 365만원)의 판매 인센티브를 지불했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42.3%나 더 많은 금액이다. 지난 5월의 경우 대당 인센티브는 3221달러(약 360만원)에 달했다. 이는 현대차가 내세운 '질적 성장'이나 '수익성 강화'와는 사실상 거리가 먼 정책이다. 

▲현대차 미국법인

미국 신차 시장은 지난 2009년 1043만대에서 2016년 1754만대로 성장했다. 해당 기간, 신차 구매 및 차량 교체에 대한 대기수요는 대부분 해소됐다. 플릿 마켓 역시 마찬가지. 현대차뿐 아니라 GM, 포드 등도 플릿 판매 비중이 줄었다. 이는 기업 전략이 아닌 시장 변화에 따른 필연적 현상이다. 

오히려 현대차의 경우 플릿 판매가 줄어듦에 따라 재고 물량이 증가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판매 인센티브를 늘렸다. 이는 ‘질적 성장을 위한 체질 개선’이란 설명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현대차의 위기는 이미 수년 전부터 예견됐다. 반기별 시장점유율은 2011년 상반기 5.1%를 정점으로 하락세를 거듭해왔다. 올 상반기 시장점유율은 4.0%까지 떨어졌다. 회사 판매 성장세 역시 2012년부터 시장 평균성장률을 밑돌았다. 

빠르게 성장하는 SUV 및 픽업트럭 시장을 외면한 경영진의 결정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은 유가 안정화 이후 SUV 및 픽업트럭 판매가 꾸준히 늘었다. SUV 및 픽업트럭 시장은 2009년 473만대에서 2011년 637만대로 확대됐고, 2016년 1064대를 달성했다. 올 상반기 SUV 및 픽업트럭 비중은 60%를 넘어섰다.

 

반면, 현대차는 모델 체인지 외 별다른 SUV 및 픽업트럭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는 오바마 행정부가 적극 추진하던 기업평균연비규제(CAFE)에 맞춰 아이오닉 등 친환경차에 집중했고, 제네시스 브랜드를 론칭하며 고급차 시장을 두드렸다. 

그러나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CAFF 규제를 완화 혹은 폐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브랜드 독립에 나선 제네시스의 올 상반기 성적은 지난해 제네시스 DH 및 에쿠스 판매량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 중국 실적, 모두 사드 탓일까?

올 상반기 현대차 중국 판매 실적은 30만1277대로, 전년대비 42.4%나 폭락했다. 현대차는 중국에서 2013년부터 4년 연속 100만대 판매를 달성했지만, 올해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현대차 측은 “사드(THAAD) 사태 여파로 중국 내 판매가 감소했다“며 “하반기에도 사드 피해가 지속될 수 있다”고 전했다.

물론, 사드의 영향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올해 1·2월 중국 시장에서 8만대와 6만대를 각각 기록했지만, 3월 사드 소식 이후 판매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2분기 월평균 판매량은 3만5000대를 겨우 넘겼다. 

 

다만, 현대차 실적 부진의 모든 원인을 사드 이슈로 단정 지어서는 안된다. 현대차는 이미 중국에서 하락세를 겪고 있었다. 현대차의 중국 시장점유율은 2009년 6.9%를 정점으로 지난해 4.8%까지 떨어졌다. 2015년까지 2위를 달리던 브랜드별 판매 순위도 지난해 5위로 밀려났다. 

현대차가 중국에서 부진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먼저, 중국에서도 빠르게 성장하는 SUV 시장에 대응하지 못했다. 중국은 거점 도시만 벗어나면, 도로 사정이 나쁘다. 이 같은 주행 환경은 크고 화려한 외관을 선호하는 소비자 성향과 결합해 SUV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끌었다. 

▲ 2017 상하이 모터쇼에서 공개된 신형 ix35.

지난해 중국 SUV 시장은 전년대비 44.6% 급증한 904만대를 기록했다. 신차 시장에서 SUV 비중은 2012년 15% 이하에 머물렀지만, 지난해 37%를 돌파했고 올 상반기 40%를 넘어섰다. 특히 SUV 시장 내 토종 브랜드 점유율은 60%에 육박했다. 중국 내 합작사와 글로벌 인수합병(M&A)을 통해 빠르게 기술을 축적한 토종 업체들은 현지인의 입맛에 맞춘 새로운 SUV를 대거 쏟아내고 있다. 올해 4월 상하이 모터쇼에 출품된 110여대 신차 중 60여대 가량이 토종 브랜드에서 내놓은 SUV였다.

그러나 현대차 SUV 라인업은 ix25, ix35, 투싼, 싼타페 등 4종뿐이다. 혼다 CR-V, 폭스바겐 티구안 등과 경쟁하던 투싼은 지난해 중국 SUV 판매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노후화되고 부족한 SUV 라인업은 브랜드 판매 순위 하락으로 이어졌다.

현대차는 올해 현지전략형 SUV ‘NU(프로젝트명)’를 포함, 오는 2020년까지 7종의 RV 라인업(MPV 포함)을 갖추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지난해 중국에서 단일 브랜드로 300만대를 돌파한 폭스바겐은 2020년까지 10종의 신형 SUV 출시 계획을 발표했다. GM도 오는 2020년까지 60종의 신차(부분변경 포함)를 출시할 계획이며, 이중 40%가 SUV 및 MPV다. 토종 브랜드 약진과 선두 업체 공세 사이에서 현대차의 행보는 소극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 현대차 중국형 신형 아반떼 '링동'

현대차는 시장 전반에 걸친 기초 경쟁력도 잃고 있다. 작년 중국 토종 업체 판매량은 전년대비 20.5% 증가한 1053만대를 기록했다. 이들의 주력 차종을 살펴보면, 크기는 키우고 옵션 사양은 최소화한 속칭 ‘깡통 모델’이 인기다. 고급 첨단 사양을 최소화하고, 기본적인 제품력과 가격경쟁력에 집중한 ‘노 프릴(No Frill)’ 전략이 주효했다. 글로벌 업체들은 현지전략형 저가 브랜드를 출시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GM 바오준, 닛산 치천(베누시아)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현대차는 시장 흐름과 반대로, 기본 사양을 강화하고 가격을 높이기 시작했다. 현대차는 이달 충징공장 생산 기념식에서도 "자율주행차의 기본이 되는 최신 지능형 차량 안전 기술 적용을 확대하고 커넥티비티 기능을 적용하는 등 차량 IT 서비스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그 동안 현대차의 강점으로 꼽혔던 ‘일정 수준의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은 어느새 실종됐다. 가뜩이나 브랜드 충성도마저 높지 않았기 때문에 현지 고객 이동은 더 빠르게 이뤄졌다.

▲ 충칭공장 생산라인을 둘러보는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

현대차는 해외 주요 시장 부진의 원인을 회사 밖에 찾고 있다. 그러나 디자인을 제외한다면, 가격부터 제품력까지 어느 하나 명확한 강점을 찾기가 힘들다. 현대차 스스로가 왜 현대차를 사야 하는지 그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 그동안 철저한 자기반성이나 노력 없이 좋은 시류에 편승해 경쟁사 악재에 반사이익만을 챙긴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먼저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 지금 현대차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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