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개는 가족이 집에 들어올 때도 격렬하게 짖는다. 문소리가 들리면 확인도 하지 않고 일단 짖고 본다. 얘가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문제는 내게도 있었다. 처음으로 개가 짖었을 때, 이제야 개 노릇 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잘못된 행동에 대한 잘못된 보상이 이뤄졌고, 결국 잘못된 학습이 각인됐다.

 

‘잘못된 학습’이 비단 반려동물과 주인간에만 국한되는건 아니다. 누구나 이런 난관에 빠질 수 있다. 사람과 사람, 매체와 독자, 그리고 회사와 소비자들도 이런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실수를 반복하는데 그것을 스스로 잘못이라 인지하지 못하는게 큰일이고, 이를 방관하는 것도 문제다.

▲ 2013년, 피아트 브랜드 론칭 행사장에서 피아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파블로 로쏘 사장.

지난 2013년 3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 피아트(FIAT)가 다시 한국땅을 밟았다. 하지만 출시와 동시에 가격 논란에 휩싸였고, 소비자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결국 출시한 첫해부터 대대적 할인이 시작됐다. 초기 물량을 구입한 소비자들은 불과 몇개월 차이로 수백만원의 웃돈을 주고 산 셈이 됐고, 중고차 가격은 곤두박질쳤다.

가격 논란이 일었음에도, 피아트는 아예 전차종의 가격을 인하했다. ‘국내 출범 1주년’이란 타이틀을 내세워 500의 가격은 무려 420만원이 낮춰졌다. 500C는 170만원, 프리몬트는 500만원 인하됐다. 그것도 모자라 500의 재고 물량은 300대 한정으로 1830만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었다.

파격에 가까운 가격 인하로 판매량은 두배 이상 뛰었다. 새차의 가격이 중고차보다 낮아졌고, 피아트는 ‘재고떨이 브랜드’란 인식이 생겼다. 그럼에도 피아트는 눈앞의 실적에 스스로 만족했다. 수입차 업계의 관행이라며 너무나 당당했다. 잘못된 학습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 피아트 500 이탈리아.

피아트는 2014년 11월, 다시 한번 500의 가격을 낮췄다. 모델 트림이 재편됐다. 결국 출시 2년만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소형차 500의 가격은 2690만원에서 2090만원으로, 2990만원에서 2390만원으로 낮아졌다.

가격 인하나 할인은 소비자들에게 좋은 기회다. 하지만 그것도 상품에 대한 가치가 존재할 때나 가능한 얘기다. 피아트는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갉아먹었고, 더이상 가격인하나 할인은 소비자들에게 자극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엔 가격 인하에도 피아트의 실적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이젠 놀랍지도 않지만, 이달부터 FCA코리아는 지난해 출시한 피아트 500X의 가격을 최대 1190만원 깎아주고 있다. ‘팝스타’는 2990만원에서 2080만원, ‘크로스’는 3580만원에서 2490만원, ‘크로스 플러스’는 3980만원에서 2790만원으로 할인 판매되고 있다. 

▲ 500X에겐 '파격 할인'이라는 특별한 점이 있다. "Something else!"

FCA코리아는 여전히 당당하다. FCA코리아 파블로 로쏘 사장은 “2016년 모델에 대한 재고가 모두 소진될 때까지 할인정책이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500X 역시 새차가 중고차보다 가격이 저렴한 ‘기현상’이 발생했고, 기존 소비자들의 재산 가치가 폭락 했음에도 FCA코리아는 “할인은 수입차 업계의 관행”이라고 설명한다. 1억원이 넘는 7시리즈를 1천만원 깎아주는 것과 3천만원짜리 500X를 1천만원 깎아주는게 같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 피아트 500X.

로쏘 사장은 지난 2013년, 한국에 피아트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자신의 삶에 100% 순수한 열정을 쏟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차”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피아트 브랜드에 매력을 느껴, 500X가 출시되자마자 선뜻 구입한 소비자들만 오히려 ‘선의의 피해자’가 된 상황이다. 그들의 잘못이라면 100% 순수한 마음으로 피아트에 열정을 쏟은 것 뿐이다. 

누군가 지금 500X를 사겠다면 말리진 않겠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30%의 할인은 무척 좋은 기회다. 다만 앞으로 피아트가 신차를 내놓았을 때는 신중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FCA코리아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대폭적인 할인을 진행 할게 분명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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